#마왕_자캐와_반해버린_용사_앤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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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빛의 커튼이 햇볕을 바쁘게 흡수하는 시각, 여름의 발랄한 정오. 그 시간대에 일을 하는 사람 중 시원한 그늘이나 서늘한 휴식을 찾지 않을 인물이 얼마나 될까. 길을 지나는 소시민들은 등골이라도 서늘하게 하기 위해 귀신 얘기를 즐겨할 것이며, 또는 얼음을 오도독 삼키길 원할 것이다. 그런 여름 특유의 더위나기의 방법 중 한가지로 자주 선택되는 괴담의 시작점이자, 가장 시원하고 음침하게 생긴 곳으로 선택되는 곳. 그곳이 어디냐 함은, 제국의 모든 사람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대륙 끝의 마왕성을 일렀다.

 

  주변에는 시체를 먹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고, 길을 잘못 들어 배고픈 나그네도 안색이 파리해져 도망을 가버린다는 대륙 끝의 철옹성. 그늘 중의 그늘, 숲의 가장 안쪽 어두컴컴한 나무 사이로 들어야 하는 곳이라 아주 시원할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피서를 가기엔 목숨이 세개라도 부족할 것이라는 마왕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까.

 

  그렇다면 막상 그 거주민은 어떻게 그 소문을 받아들이고 있을까, 신경이나 쓰고 있을까? 짧은 궁금증을 살펴보기 위해 그의 대화를 흘려보자면- 그 철옹성은 외관과 음침한 소문과 다르게도, 중앙홀 위층의 침실에서부터 연신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빨리 말해봐. 오늘따라 왜이리 늦지? ... 설마 아직..? "

 새까만 구릿빛이라기에는 여리고, 희고 부서질 듯 하다기엔 짙은 다갈색의 피부 위로 어둑한 금안이 느릿하게 끔뻑거린다. 이리저리 뻗친 고동색의 머리가 꽤나 야성적으로 비추어지는 큰 체구의 남성이 답답하다는 듯 고급스러운 거울 앞에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꽤나 투박하고 세게 생긴 인상이건만, 남자는 제 외관과 다른 짧고 느린 한숨을 쉬어낸다. 두번째로 의외인, 다정한 음성도 숨 뒤로 따라붙었다. 이봐, 엘모. 자는거야? 두어번 고급스러운 거울을 툭,툭 건드리자 그제서야 거울이 하품을 하는 것이 보인다. 왜요? 왜 불러요 마왕님? 귀찮아 죽겠어, 아침부터. 적나라한 표현에도 어쩔 수 있겠냐는 듯, 남자는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 아침은 무슨. 해가 중천이라고 ... , 왕보다 늦게 일어나는 거울이 어디있어. 아, 물론 너무 피곤하면.. 더 자도 돼. "

" 여기 있죠. 배를 째시든가..진짜 더 자도 되죠? "

" ? 거울에게 배가 어딨어. 있어...? 몰랐어. 쨀 수 있나보네? 난 좀 그래... "

" 아, 진짜. 문맥 좀 읽어줄래요? 답답해 죽겠네! "

 캬악, 곧이곧대로 소리를 질러대는 건 놀랍게도 온 대륙의 마족들이 탐낸다는 마법의 거울이었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도 아니고, 마법의 거울이라니 참 클리셰적이다 싶겠지만- 클리셰란 클리셰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종족들에게 흑마법이 걸린 물품은 흔하지만 귀한 것이었고, 무슨 질문이든 응답을 해주는 물건이란 당연지사 높디 높은 인물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라. 또한 당연하다는 듯 거울이 마왕의 손에 들어온지는 지금이 3주째겠다. 또-한 당연하게도 마왕성에 들어온 것이 얼마 안된 시점이니 만큼, 그 주인도 아직 이 물건을 사용할 때마다 들뜨는 감정이 있는 것이라. 그것을 다갈색 피부의 남성은 숨기지 못했고, 그 들뜸을 바라보는 마법의 거울-이하 엘모-는 이제껏 자신을 가졌던 주인들 중 네 반응이 제일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은 지가 3주째라는 말이 되겠다.

 허나 아무렴 어떤가, 마왕도 몇 번은 이 소담스러운 감정을 숨기려고 해본 적도 있으나 신나는 것은 신나는 것이었고, 이제는 웃음을 숨기는 걸 포기한 채 거울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 3일째 아니던가. 다시 흠흠, 하고 목소리를 조절해 보지만 슬쩍 텐션이 올라가 보이는 목소리로 마왕은 덧붙였다.

" 여하튼, 이번에 납치해온 새 사제의 정보는 들었겠지? 엘모. "

" 뭐요, 저번 용사가 뒤져서 새 용사가 발표됐다는 거요? 누가 몰라. "

" 나는 몰랐잖아.. 나만 몰랐나봐.. 아니, 네가 알려줘야지. 사제한테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 그래서... , 이번 용사는 누구야? "

 헝, 하고 바보 소리를 낼 거 같은 사내를 보고 거울이 정확히 여섯 번을 더 한숨쉬더니, 정말로 귀찮아서 죽어버릴 것 같다며 뭣같은 표정으로 대답없이 뒤를 돌았다. '대체 몇 번 죽는건데..' 하고 묻는 마왕에게 제대로 응답하는 것보다 제 잠이 더 급한 눈치로, 건방진 거울은 제 안의 자리를 비워냈다. 그렇게 거울 속 영혼이 비워지자 고풍스러운 물품은 잠시 마왕의 검붉은 뿔과 매섭게 생긴 얼굴만을 비추는가 싶더니, 물결처럼 일렁이며 빛과 함께 무언가의 영상을 불러내었다. 영상이라기에는 그들의 시대는 미래가 아니었으므로, 정확히는 상대방의 현재를 투영해내는 것에 가깝겠다.

 아무쪼록 그렇게 마왕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보랏빛이 섞인 남성의 얼굴이었다. 자신과 달리 희고 흰 피부에 말라보이는 체구. 한쪽 눈을 다 가린 붕대와 그 위를 덮은 하얀 색의 머리카락. 뭐가 마음에 안드는 지 슬쩍 찡그리다 웃는 것과, 이내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귀염상이라 어쩐지 마왕은 ' 어.. ' 하는 소리를 삼켜야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상대방을 바라보다가, 거울이 " 이제 됐죠? " 하고 멈추고서야 마왕은 숨을 들이쉬었다. 어어, 조금, 이상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그래서, 왜 용사는 안 보여줘? "

" 방금 본 게 용사인데요. "

" 아냐. "

" 맞는데요? "

" 아냐, 다시 보여줘. 너 잘못 비춰준 거 같아. ...아마. "

 뭐라는 거에요? 제가 뭔가를 잘못 보인 적은 1000년동안 한 번도 없었거든요? 지금이 그 첫번째인가보지. 와아, 진짜 막말하네! 한 번 더 보여줬으면 하는데. 또 보여줬는데 아까랑 똑같으면, 100년간 일 안 할 거에요. ... 그래, 좋아. 보여줘. 콩트같은 대화 후에 다시 거울 속 영혼이 씨근대며 자리를 비킨다. 물처럼 거울의 내면이 흔들리고, 다시 인영이 흐려지며 다른 이가 투영되는 것을 보며 마왕, 그러니까 - 클레멘스는 생각했다. 이 침실은 분명 대륙의 그 어디보다도 서늘할텐데... 어쩐지 자신의 볼은, 여실히 더운 것만 같다고.

 

' 왠지, 쟤가 용사면.. 안될 것 같아... ... 내가. '